리틀 포레스트(Little Forest)

경주국립박물관 9

신장(神將)-, 신라와 불법(佛法)을 보호하다.

신라인들은 불교가 그들의 나라를 지켜준다고 믿었다.  이러한 믿음은 신라의 신장상에 생생하게 구현되어 있다. 신장은 부처, 보살보다 지위가 한 단계 낮은 신들의 무리를 가리킨다. 주로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들어 악귀를 굴복시키는 형상을 하고 있다. 무력으로 적을 항복시켜 불법(佛法)을 수호하고, 부처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호한다. 신라에서는 금강역사(金剛力士), 사천왕(四天王), 팔부중(八部衆)과 같은 다양한 신장상이 만들어졌다. 상(像)에서 보이는 강렬한 표정, 근육질의 몸, 힘차게 움직이는 듯한 자세는 불국토 신라를 수호하는 이들의 임무를 잘 보여준다.

'신라 천 년의 미소'-, 인면문와당(人面文瓦當·얼굴무늬 수막새)

때는 1934년 일제강점기당시 경주에 살던 한 일본인이 읍내의 어느 고물상에서 발견한 반쯤 깨진 기와 한 장을당시 돈 100원에 삽니다.도톰한 입술, 위로 들린 입꼬리, 살짝 내민 눈동자...흔히 보던 연꽃무늬가 아닌 사람의 얼굴 무늬의 기와였습니다.조선총독부 기관지 조선 6월호에 '신라의 가면화·假面瓦'로 소개되며세상에 처음 알려진 7세기 신라 시대 유물-,정확한 명칭은 '인면문와당(人面文瓦當·얼굴무늬 수막새·보물 제2010호)'이었습니다.하지만 1940년 기와의 소유자였던 '다나카 도시노부'가 고국으로 돌아가면서일본으로 건너간 이 유물은이후 그 존재가 점차 잊혀져갔습니다.그리고 30여 년 후... 사라진 기와를 찾아 나선 당시 경주박물관 박일훈 관장이오랜 수소문 끝에 일본인 소유자를 찾아내 끈질기게 ..

금강역사(金剛力士)

통일신라 7세기(统一新羅 7世紀) 경주 구황동 절터 원래 인도 고유의 신인 금강역사는 불교가 성립된 이후 부처님과 그 가르침을 지키는 수호자 역할을 맡는다. 동아시아에서는 주로 한 쌍으로 등장하는데, 한구는 입을 벌리고 있고 다른 한 구는 입을 다물고 있다. 입을 벌리고 있는 상은 범의 첫 글자인 '아'를, 입을 다물고 있는 상은 범어의 마지막 글자인 '훔'을 표현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 금강역사상은 석탑 1층 몸둘 네 면에 세운 금강역사상 여덟 구 가운데 두 구이다. 구황동 절터에는 지금도 금강역사상이 네 구 남아 있다. 이곳에서는 분황사 모전석탑과 같은 벽돌 모양 석재도 발견되었는데, 분황사탑과 마찬가지로 이 상(像)도 감실 좌우에 배치되었을 것으로 본다.

천마총 금관(天馬塚 金冠)

천마총에서 발견된 신라 때 금관으로 정확한 명칭은 '천마총 금관(天馬塚 金冠)'. 천마총은 경주 고분 제155호 무덤으로 불리던 것을 1973년 발굴을 통해 금관, 팔찌 등 많은 유물과 함께 천마도가 발견되어 천마총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 금관은 천마총에서 출토된 높이 32.5㎝의 전형적인 신라 금관으로 묻힌 사람이 쓴 채로 발견되었다. 머리 위에 두르는 넓은 띠 앞면 위에는 산(山) 자형 모양이 3줄,뒷면에는 사슴뿔 모양이 2줄로 있는 형태이다.산(山) 자형은 4단을 이루며 끝은 모두 꽃봉오리 모양으로 되어있다.금관 전체에는 원형 금판과 굽은 옥을 달아 장식하였고,금실을 꼬아 늘어뜨리고 금판 장식을 촘촘히 연결하기도 하였다.밑으로는 나뭇잎 모양의 늘어진 드리개(수식) 2가닥이 달려있다. 금관 안에 쓰는..

비로자나불(金銅毘盧遮那佛立像)

통일신라 불상은 8세기에 사실적 표현, 입체감, 균형미에서 정점에 이르렀다고 평가된다. 석굴암 본존과 월지 판불은 이러한 전성기 양식을 대표하는 예이다. 9세기에는 몸과 옷주름의 유기적 조화가 약화되며, 얼굴에서는 이상화된 모습이 사라지고 개성이 드러난다. 8세기와 9세기 불상을 구분하는 것이 때로는 쉽지 않은데, 9세기 불상 중에는 8세기 불상의 느낌을 일부 지닌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서 있는 자세로 표현된 불상에서 옷 주름은통일신라 초기부터 보이는 두 가지 형식이 8-9세기에도 이어진다. 하나는 U자형 주름이 다리 아래까지 이어지는 형식이고, 다른 하나는 U자형 주름이 갈라져서 두 다리로 나뉘는 형식으로, Y자형 옷주름이라고도 부른다.9세기 통일신라 작품이다.

미륵삼존불

미륵삼존불 경주 월지 통일신라 7세기 말 높이 27.0cm. 통일신라 불상은 8세기에 사실적 표현, 입체감, 균형미에서 정점에 이르렀다고 평가된다. 석굴암 본존과 월지 판불은 이러한 전성기 양식을 대표하는 예이다. 9세기에는 몸과 옷주름의 유기적 조화가 약화되면, 얼굴에서는 이상화된 모습이 사라지고 개성이 드러난다. 8세기와 9세기 불상을 구분하는 것이 때로는 쉽지 않은데, 9세기 불상 중에는 8세기 불상의 느낌을 일부 지닌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서 있는 자세로 표현된 불상에서 옷주름은 통일신라 초기부터 보이는 두 가지 형식이 8-9세기에도 이어진다. 하나는 U자형 주름이 다리 아래까지 이어지는 형식이고, 다른 하나는 U자형 주름이 갈라져서 두 다리로 나뉘는 형식으로, Y자형 옷주름이라고도 부른다.

비로자나불(金銅毘盧遮那佛立像)

통일신라 9세기에 제작된 비로자나불(金銅毘盧遮那佛立像)이다.곧추 세운 왼쪽 검지 위로 오른손가락을 굽혀 살짝 맞댄, 통일신라 비로자나불상에서는 드문 형태의 지권인을 하고 있다.풍만한 얼굴에 두 눈을 지긋이 감고 깊은 사색에 잠긴 모습에서불국토 나라, 신라의 문화유산을 한눈에 살필 수 있다. *비로자나불은 불교의 부처 중 하나로, 온 세상에 존재하는 불법(부처님 법)의 진리를 '광명(밝은 빛)'또는 '태양'으로 형상화한 부처이다.'광명이 두루 비친다'라는 뜻으로 부처의 가장 궁극적인 모습(佛身)의 진신(眞身). 비로사나(毘盧舍那), 노사나(盧舍那)라고도 한다.수인은 지권인(智拳印)으로 손가락을 꼬거나, 한 손의 검지를 다른 손바닥으로 움켜지는 형상이다.이것은 너와 나, 부처와 중생이 둘이..

국보 제275호 도기 기마인물형 뿔잔

도기 기마인물형 뿔잔은 고대 우리나라 무사의 위풍당당한 모습을 잘 보여주는 걸작이다. 제작시기는 삼국시대로 5세기 가야 유물이다. 나팔 모양의 굽다리 위에 직사각형 판을 놓고, 그 위에 말을 탄 무사와 두 개의 뿔잔을 붙여서 만들었다. 쇠비늘을 엮어 만든 말 갑옷을 자세하게 표현했다. 무사는 갑옷을 입고 투구를 썼으며, 방패와 창을 지니고 있다. 갑옷에는 목가리개가 뚜렷하게 표현되어 있고, 갑옷의 등에는 깃대장식이 있다. 투구에는 특이한 챙이 들려져 있으며, 정수리에 장식이 우뚝 솟아 있다. 말탄 무사모양뿔잔은 고구려 벽화에 등장하는 말 탄 병사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이 뿔잔은 덕산에서 출토되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덕산이라는 지명이 전국에 여러 곳이 있기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