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1934년 일제강점기
당시 경주에 살던 한 일본인이 읍내의 어느 고물상에서 발견한 반쯤 깨진 기와 한 장을
당시 돈 100원에 삽니다.
도톰한 입술, 위로 들린 입꼬리, 살짝 내민 눈동자...
흔히 보던 연꽃무늬가 아닌 사람의 얼굴 무늬의 기와였습니다.
조선총독부 기관지 조선 6월호에 '신라의 가면화·假面瓦'로 소개되며
세상에 처음 알려진 7세기 신라 시대 유물-,
정확한 명칭은 '인면문와당(人面文瓦當·얼굴무늬 수막새·보물 제2010호)'이었습니다.
하지만 1940년 기와의 소유자였던 '다나카 도시노부'가 고국으로 돌아가면서
일본으로 건너간 이 유물은
이후 그 존재가 점차 잊혀져갔습니다.
그리고 30여 년 후... 사라진 기와를 찾아 나선 당시 경주박물관 박일훈 관장이
오랜 수소문 끝에 일본인 소유자를 찾아내 끈질기게 설득을 합니다.
"완벽한 형태의 얼굴 모양 기와는 그것이 유일합니다.
제발 되돌려 주세요!"라고...
드디어 1972년 10월 국립경주박물관에 기증돼
'인면문와당(人面文瓦當·얼굴무늬 수막새)'이란 이름으로
우리와 함께 하게 돼요.
지붕의 기왓골 끝에 사용됐던 기와...
비록 한쪽 턱 부분이 깨졌지만 아름다운 미소를 보여주는
일명 '신라 천 년의 미소'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예전의 모습은 어땠을까요?
비록 원의 일부만이 남아 있지만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기와의 일부만으로도
그 가치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가득합니다.
"옛 신라 사람들은 웃는 기와로 집을 짓고 웃는 집에서 살았나 봅니다.
(중략)
나도 누군가에게 한 번 웃어주면 천 년을 가는 그런 웃음을 남기고 싶어
웃는 기와 흉내를 내봅니다." - 이봉직 '웃는 기와' 中
1400년 전 우리 조상들은 웃으며 살았는데...
오늘을 사는 우리는 서로를 못 잡아먹어 으르렁 거리며 살고 있습니다.
적대시하며 사는 모습이 참 부끄럽습니다.
'신라 천 년의 미소'로 잘 알려진
'인면문와당(人面文瓦當·얼굴무늬 수막새)'을 보며 웃어 봅시다.
웃으며 삽시다.
웃다 보면 웃을 일이 생기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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