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주 작가의 '조선 막사발과 이도다완'의 책을 구입해 딱 한 번을 읽었다.
중고책을 구입한 후 몇 컷의 사진을 찍고 귀한 책을 구했다며 자랑을 했던 것이 지난해 마지막 날이었다.
그리고 독서 후 후기를 쓰겠다고 포스팅했다.
300p 분량의 책을 보면서 느낀 점은 딱 하나! 작가는 사실보다는 생각을 서술했다.
나 역시 100여 개 가까이 되는 다완을 수집하면서 이런 오류를 수없이 저지르고 있으니까!
이 책을 읽고 나름 정리한 독서 후기를 적어보려 한다.
아름다움은 발견하는 자의 몫이다.
일본인들은 자연의 오묘함, 불꽃을 통해서 나타난 새로운 자연을 우리의 다완에서 본 것이다.
말하자면 이 세계는 가공의 세상을 통해서 나온 거지만
인위의 세상, 즉 아티팩트(artifact)란 말이다.
사람의 손을 통해 나온 것이긴 하지만 그 인위(人爲)를 벗어난 거다. 탈인위(脫人爲)인 것이다.
그 순간 자연스러운 또 하나의 세상을 사무라이들은 조선의 다완에서 보고 찾은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흙속에서 아무런 형태가 없는 그런 흙을 바라본다고, 있는 그대로 무위(無爲)의 세상(世上)...
무위의 세상을 흙속에서 바라본 것이다.
300p 책을 일곱 개의 문장으로 정리해봤다.
조금 더 길게 내 생각을 말해볼까?
평론(評論)이라는 것이 사실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이 책에서 찾았다.
사실보다는 저자의 생각, 즉 이야기 구조를 적은 것이다.
사실과 생각이 혼재한 책이기에 논리를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저자의 글에 나의 생각을 덧붙여 봤다.
'평(評)은 평일뿐, 평(評)이 실체를 얘기하는 건 아니란 사실!
그리고 평(評)이라는 건 내가 그것을 통해서 본 것을 얘기해주는 거라는 것을...
그런데 평(評)이라는 것도 사람들이 멋지게 생각하도록 만들어야 할 것 아냐?
그러니까 나는 얘기한다.
다완(茶椀)이라는 게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거기서 아름다움을 발견했는데,
그 아름다움을 발견한 아름다움이 무엇이냐 하면 사람의 손을 거쳤더니 또 하나의 무위(無爲)의 세상(世上)이,
그 조선 다완에서 찾아지더라는 거야.
그것을 막걸리로 마셨을 때는 아티팩트였어.
그러니까 인위적인 그릇이었어.
그러나 거기에 차를 담는 순간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 거야.
그럼 어떻게 된 거냐?
사람이 사람을 손을 통해서 그릇을 만들고, 그 그릇의 용도를 사람이 정했더니
갑자기 거기서 탈속(脫俗)이 이루어진 거지.
그러니까 이도다완은 뭐냐? 인위(人爲)였지만 인위(人爲)가 아닌 거야.
속(俗)이었지만 속(俗)이 아니었던 거고...
그것은 마치 노자의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도는 말로써 한정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님)와 일맥상통하는 거지.
우리가 다기(茶器)라고 말하는 순간 다기였지만
다기가 아니라고 하는 순간 다기가 아니게 된 거야.
다기라고 얘기하는 순간 다기가 아니고,
다기가 아니라고 얘기하는 순간 또 다기가 된 거야.
그래서 도(道)는 도인데 도가 아니며, 도가 아닌 동시에 도가 된 거야.
그래서 두 개의 모순점
인위(人爲)와 탈인위(脫人爲가) 동시에 혼재하는 것! 그것이 이도다완(井戶茶椀. 정호다완)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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