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재를 하면서 매일 반문한다. "눈을 떠야 한다"
그러나 이 같은 말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갈 길은 먼데, 제자리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꼴이 되고 만다.
슬슬 스트레스가 쌓인다. 뭐가 문젤까? 욕심 탓이려니 돌리지만 꼭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언가가 내 속을 답답하게 한다.
"저게 어디 나무야? 몽둥이지!" "아직도 멀었어. 그 안목으로 나무의 가치를 높일 수 있겠어"...
이 말은 같은 공간에 있는 취미인이 내게 한 말이다.
"그럼 네 나무는 하나 같이 가치가 있는 나무야? 나이값 좀해라. 남의 나무 폄훼하지 말고, 당신 나무나 잘 봐라"라고 되뇌인다.
볼 때마다 자기 나무 자랑을 하는 탓에 이 생활도 접고 싶다.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는 비밀정원... 나무가 들을까봐 내색하지 않지만, 때론 큰 소리로 외치고 싶다. "저 녀석이라고 저렇게 태어나고 싶었겠어요. 주인 잘못 만나 악담을 듣는 거지"라고...
돈만 있다면 확 질러 버리고 싶다. 100억 정도 나무에 투자에 다시는 이런 더러운 기분을 씻어내고 싶다. 좋은 나무란 나무는 다 사서 비밀정원에 두고 싶다. "저 진백은 인터넷 분재 박사들이 추앙하는 목촌정언이 개작한 것이고, 저 소나무는 일본에 건나가 개작된 조선 적송이고, 저 주목 역시 우리나라에서 산채돼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나무공장에서 관리된 이찌이(주목의 일본명)고... 뭐 이런 스펙들로 꾸며진 나무들과 꽉 채우며 자랑하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왜 할까? 나무가 좋아서 분재를 시작했다고 힘주어 이야기했건만... 나 역시 똑같은 인간이 되고 있으니... 참으로 참담한 마음을 씻을 주 없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하나 같이 박사들이 개작시연을 하며 눈을 흐리게 하고... 가위들고 잎베고, 잎따며 친절한 설명을 하는 것을 보면서 이런 스트레스를 받으며 왜 해야하나 한심한 생각이 머리를 꽉 채우고 있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꼭 가격을 정해 명목이니 해야 좋은 나무가 되는 걸까?
"저 나무가 3백만원의 가치가 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사서 다시 만들겠지만, 손을 봐도 저 나무는 저 나무야"라는 조언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내 눈에는 아주 훌륭한 나무인데... 이런 말을 들으면 머리가 혼란스러워진다. 그럼 나도 똑같은 부류의 사람이 되는 건데... 나무에 가치를 부여하는 속물이 되는 건데...
뭐가 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나무가 좋아 시작했는데, 나 역시 남의 평가에 오기가 발동해 좋은 나무를 사려고 하니... 이렇게 속물이 되려고 분재를 하는 건가... 이렇게 변하는 내가 잘하고 있는 건가... 내가 좋은 나무를 가꿔 비싼 가격에 분양할 것도 아닌데... 그저 나무가 좋아 흙 만지고, 나무 만지며 마음을 다스리고 싶은 게 전부인데...
긴호흡으로 작은 즐거움을 쌓고 싶어 시작한 분재... 분재생활에 최대 위기에 다다랐다. 분생활 10년도 안 된 사람들이 던진 한마디에 무너지고 싶지는 않은데, 그 말이 계속 귓전을 맴돈다.
내 정원에도 풋풋한 봄향기가 코끝을 맴도는데, 그 향기에 취해 행복에 젖어야 하는데... 내 마음은 태풍 속의 찻잔처럼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수덕사 입구를 지키고 있는 입석에 다음과 같은 글귀로 오욕에 젖은 마음을 다스려 볼란다.
'삼일동안 닦은 마음은 천년의 보배요. 백년의 탐물은 하루 아침 이슬과 같다네.
* 최근 내 마음을 사로 잡은 모과. 하지만 앞부분 상처와 가지를 잘못 받아 향후 5년 동안 몸둥이만 남기고 다시 배양해야 한다는 조언에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다. 지금의 모습대로 키우고 싶은데... 혼란스럽다.
* 많이 부족하다는 말에 나 역시 부족한 소재로 보고 있다. 사람의 마음은 흔들리는 갈대가 맞다는 생각에 사로 잡히게 하는 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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