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집으로 이사가야 하니, 칫솔로 깨끗하게 닦아주렴"
"그냥 분갈이 하면 안 될까요?"
"새집으로 이사가는 데 깨끗하게 청소해야 좋은 거 아니니"
"나중에 해요. 저 오늘 분갈이 하느라 몸살 앓겠어요"
"묶은 때를 배껴내야 나무도 좋지 않겠어. 요령부리면 나무도 스트레스 받는다"
"...."
"왜 말이 없어?"
"... 알았어요"
요사이 분갈이 할 때가 돼서 참 힘들다. 단순하게 나무를 분에서 빼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나무를 분에서 빼기 전에 해야할 일이 참 많다. 조심스럽게 다뤄야 하고... 뿌리도 털고, 물로 깨끗하게 씻어줘야 나무가 새집에서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는 것만으로 흐뭇해 하던 시절... 관상에만 촛점을 맞췄지 이런 수고스러운 일을 하게 될 지 미처 몰랐다.
뿌리 터는데 1시간, 얼음장처럼 찬물에 깨끗하게 씻어 내는 데 1시간... 그렇게 주목은 때빼고 광내는 과정으로 통해 새집으로 이사했고, 그 고된 과정을 겪은 후 내 블로그에 근사한 모습 한 장을 남기게 된 것이다.
가장 큰 걱정은 오는 3월, 내 품에 안기는 중품 사이즈의 주목과 천년사리를 자랑하는 현애 주목이다. 이 두 나무는 자연 그대로 뒀기에 묶은 때가 장난이 아니다. 비바람를 이겨낸 흔적, 예쁜 수형을 위해 잘려나간 가지들... 그 사이에 낀 이끼와 때를 보면 긴한숨이 절로 나오게 한다.
좋은 나무를 갖고 싶은 욕망은 날로 쌓이지만 더 멋진 나무로 태어나기 위해선 나의 고단한 작업도 계속 될 듯 싶다.
"내가 미친놈이지. 왜 사서 고생을 하지"라고 푸념하면, "그렇게 50년을 때빼고 광내며 살았다. 이제 1년 조금 넘은 녀석이 힘들다고 투정부리냐?"하시면서 "의욕만 갖고 하지 마라. 쉬면서 해. 웃으면서... 생명을 갖고 있는 나무도 네 푸념에 언짢아 하겠다"라며 타이르신다.
내 몸 하나 간수하지 못해 목욕탕에서 세신을 하는 나... 나무에 쏟는 정성이면 뭐든 하겠다 생각하니 씁쓸했다.
좋은 나무가 되길 바라면서 깨끗하게 씻어내는 과정을 귀찮아 하는 불량 취미인... 스스로 자신의 몸을 죽이면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는 주목의 끈기와 열정을 배워야 하는 내가, 이렇게 푸념할 줄은 몰랐다.
보기 좋게 사리를 내기 위해 불필요한 가지를 자르는 나... 하지만 고맙게도 천년사리 주목은 그런 수고를 덜어주었는데, 칫솔로 깨끗하게 닦아내기 귀찮아 요령을 피우고 있다.
날씨가 풀리면 칫솔들도 묶은 때를 닦아주어야 한다. 그날이 오늘이 될지, 내일이 될지 모르지만, 나무를 위해서라도 한시라도 빨리 결정해야 할 터... 어쩌면 불량스러운 나를 위해 천년을 기다려준 나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주인을 잘 만나면 더 멋진 천년 주목이 될 수 있을 텐데..." 하는 원망스러운 이야기를 주목이 하는 것 같다.
"내년 겨울이 되면 아주 죽겠다는 말을 달고 살겠다. 눈향나무가 50여 그루인데... 때빼고 광내다 네가 죽겠구나" 하시며 껄껄 웃으시는 스승님 모습에서... 50년 긴세월을 이겨낸 명장의 포스가 느껴진다. 그 긴세월 오직 한우물만 판 스승님의 손을 보며 옷매무새를 고쳐맨다. 남은 생 오직 내 나무와 함께 웃고, 울며 살겠다고!
p.s.
다짐은 했지만 뒤돌아서니 긴한숨만 나온다. 누가 내 대신 때빼고 광내줄 사람이 있으면 좋으련만...
* 묶은 때를 배껴내려면 한나절로는 턱없이 부족한 주목. 비오는 여름이면 칫솔 들고 묶은 때를 시원하게 배껴내야지...
* 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자연사리 주목. 하지만 골사이로 세월의 먼지가 덕지덕지 붙어 있어 긴시간의 작업이 필요한 주목. 하지만 볼수록 정이 가는 나무라 입가에 웃음이 떨어지지 않게 하는 애장목 중 하나.
* 최근 자연사리에 송진으로 덧칠했다가 다시 칫솔로 닦아내느라 엄청 고생했던 소품 주목. 구석구석 닦으면서 잘못된 정보를 올렸던 사람을 엄청 원망하며 다시는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믿지 않겠다며 이갈며 작업한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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