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포레스트(Little Forest)

나의 이야기

분재는 일본에서 건너온 문화가 아니다

heymryim 2013. 2. 9. 10:10

 분재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일본식 문화라는 점이다. 일제 강점기 당시 일본인들이 사는 집에는 분재 한두 점씩은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 나라를 뺏긴 한국인들에게 일본인들이 키우는 분재가 곱게 보일 리 없었고, 또 분재는 '왜색문화'라는 선입관도 갖게 된 것이다.

 이 기회에 정확히 짚어 보고자 한다. 분재는 절대 일본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고, 또 일본의 전유물도 아니다. 동양의 많은 문화가 그랬듯이 분재는 중국에서 먼저 시작돼 한국으로 건너왔다가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문화다. 서양의 분재 역사는 훨씬 오래됐다.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에서는 기원전부터 분에다 식물을 키웠고, 기원전 100년경 고대 로마에는 운모석으로 만든 온실이 있었다고 전해질 정도다.

 그럼 우리나라 분재의 역사는?

 391년즈음, 백제 16대 진사왕이 왕궁을 지으면서 궁중 뜨락에 연꽃 연못과 정원을 꾸몄다는 기록이 전해 내려온다. 이것은 한국 정원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그리고 아직 구체적인 사실을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통일신라와 고려를 거치며 정원 문화가 점점 분재로 발전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고려시대 명종 시절에 옥으로 만든 조화를 둥근 그릇에 담아놓은 것이 현재 경남 합천 해인사에 남아 있다.

 고려 때 재상을 지낸 이규보의 6개 시문도 당시 분을 활용한 화초 심기가 일상적이었음을 알려준다. 고려시대 재상을 지낸 전록생(1318-1375)이 여덟 살 때 지은 분재시 역시 이미 예전부터 집 안에서 분재를 길렀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

 일본의 분재에 대한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분재보다 조금 앞서 형태가 조경인데, 일본 조경의 시조로 추앙을 받는 사람이 바로 백제인이라는 것이다. 일본의 호류사 건립기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백제의 부여 정림사를 건립한 목수와 정원사 로자공 선생이 611년경 나라로 건너와 호류사를 세웠는데, 이때 로자공 선생이 그 정원에 수미산을 만들었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펀징, 한국에서는 분재, 일본에서는 본사이라고 불리는 분재. 하지만 세계적으로는 일본의 '본사이'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기원이야 어찌됐건 일본이 기술적으로는 그만큼 앞서가고 있다는 얘기다.

 지금 중요한 것은 누가 먼저 분재를 시작했는지 따지는 일은 아니다. 왜 아름답고 고귀한 예술 행위를 일본 것으로만 치부해버리는가? 분재는 인류 역사상 오래된 문화이며, 쉽게 버리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고급 예술이다. 섬세한 감각과 예술적인 심미안을 가진 한국인에게 분재는 특히 잘 어울리는 장르다. 섣부른 편견에 사로 잡히는 대신, 보다 풍부한 현대적 분재문화를 가꾸어가는 것이 어떨까?

 

p.s.

분재가 왜색이란 오해를 사는 것은 우리나라 분재협회에도 문제가 있다. 인터넷 주소에 bonsai로 버젓이 쓰고 있으니까! bonsaitv.co.kr 주소도 있다. 바르게 알고 쓰자. bunjae.co.kr로 고쳐야 하는 이유는 위의 설명으로 대신한다.

 

*황피느릅나무는 오직 우리나라에만 있는 고유 수종(제주도 한라산에만 자생)

 

* '조센소로'란 이름으로 유명한 조선 소사나무(역시 고유의 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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