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백록담
11,500여 제곱미터 담수 면적을 자랑하는 한라산 백록담...
이곳에 물이 가득 찬 모습을 기대하며 산에 올랐다.
1백 미터를 오를 때마다 설문대 할망께 빌었다.
"한라산에 허락없이 들어왔습니다.
용서하십시오, 할망.
다치지 않게 할망품에 안기게 해 주십시오"를 반복하며 지친 발걸음을 내디뎠다.
*설문대 할망이 제주도를 만들었다.
특히 한라산은 할망이 치마폭에 흙을 담아 날라서 만들었다는 설화가 있다.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태고의 신비감은 더해간다.
자연의 진귀한 풍경은 생(生)과 사(死)를 모두 품고 있었다.
지구온난화로 한라산의 생태계도 망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위에 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구상나무들이 말라죽고(枯死) 있다.
쓰러진 죽은 나무를 뒤로 하는 발걸음은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정상에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데 멈출 수는 없는 법...
결국 정상에 올라 간절한 마음으로 백록담을 내려다봤다.
운무(雲霧)가 잔뜩 껴서 앞을 볼 수 없었지만 잠시 후 설문대 할망의 배려가 있었던 탓인지
물을 머금은 백록담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담수량은 많지 않았지만 태곳적 장관을 연출하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자연의 진귀한 풍경에 빠져 연신 셔터를 눌렀다.
대자연의 웅장함도 잠깐,
어느새 백록담에는 안개가 찾아들면서 사람의 발길을 거부한다.
구름 장막 사이로 언뜻언뜻 드러내는
백록담은 마치 꿈속 세계처럼 신비롭고 몽환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그렇게 짙은 안개와 구름과 여러 차례 밀당은 계속됐지만
결국 내가 원했던 사진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흘러넘친 백록담.
안갯속에 갇힌 한라산은 그 모습을 쉽게 보여주지 않았지만 그날만큼은(7월 5일 일요일)
등반객들 모두에게 좋은 추억거리를 허락했다.
30분 남짓 한라산 정상에서의 행복한 추억 만들기를 뒤로한 후
아쉬움은 다음으로 미루고 하산을 서둘렀다.
비록 홀로 산행이었지만 한라산의 절경은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눈에 선하다.
고되고 힘든 등반길이었지만 정상에서의 뿌듯함,
그리고 제주의 푸른 하늘과 여름의 초록빛을 고스란히 담아냈다는 것이 이번 여행의 백미였다.
자연이 빚어낸 신비로움은 내게 아름다운 추억으로 두고두고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