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친왕비 이방자 여사 고려다완(高麗茶椀))
어떤 이는 있는 돈 탈탈 털어 주식에 투자했다고 자랑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부동산에 투자를 잘해 떼돈 벌었다고 좋아하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은 가진 게 돈밖에 없어 써도 써도 줄지 않는다고 개진상을 떨고... 이렇게 여유가 있는 사람들의 말을 듣다 보면 더러워진 귀를 씻고 싶고, 더러워진 눈과 마음을 깨끗이 닦아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가진 사람들의 저런 허세를 들으며 귀한 시간낭비를 해왔습니다. 어쩌면 지금도 매시간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는지 모릅니다. 재벌도 아닌 사람들이 "세상에서 제일 쉬운 일이 돈 버는 것"이라고 자랑하는 것을 들으면 속이 많이 불편해집니다. 왜 아주 많이 갖고 있는 사람들은 겸손하지 못할까요? 듣고 싶지 않은 사람들도 많은 데 공공장소에서 자기 돈 자랑만 하니...
허언증이라고 들어보셨죠. 과장된 이야기를 마치 사실인 것처럼 말하는 병적인 사람들을 '허언증'이라 합니다. 사실 이런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면 몸과 마음이 피곤해집니다. 아니 피폐해집니다. 사회 생활하다 보면 이런 못난이들이 참 많습니다. 그 불필요한 이야기를 들을 이유가 없잖아요. 그럴 땐 "당신 이야기를 더 이상 들어줄 시간이 없습니다. 먼저 일어납니다."라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나만의 시간을 가져보십시오. 그게 정신 건강에 좋습니다.
저는 말입니다. 지난 시간을 깨끗하게 정리한 후 나만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게 뭐냐?... 좋은 찻잔에 몸에 좋은, 특히 정서안정에 큰 도움이 되는 차 마시는 일입니다. 조용히 찻물을 내려 오래된 찻사발에 담으면 마음이 평온해집니다. 은은한 찻향을 코로, 옅은 초록물을 눈으로, 그리고 찻사발에 입술이 닿았을 때 그 느낌과 또 찻물을 음미하다 보면 마음의 평온을 느낍니다. 그리고 세월을, 세상을, 우주와 함께 하는 아주 특별한 기분을 갖습니다.
저는 물질적으로 매우 가난한 작가(作家)입니다. 28년 넘게 라디오와 TV를 넘나들며 일했기에 사실 마음마저도 가난한 작가인데요. 그런 까닭에 나무를 가까이 했다가 큰 상처를 입었고, 그래서 한동안 그 아픔을 이겨내기 위해 참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바로 이 때 저를 구원해준 것은 세월을, 세상을, 아니 우주를 담은 고려다완(高麗茶碗), 조선 다완(朝鮮茶椀))으로 불리는 찻사발, 찻잔이었습니다. 비록 가진 것은 없으나 허언증 환자들과는 다른 것을 갖게 됐습니다. 우리 선조들이 만든 도자기 공예품들 말입니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좋은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우리 사기장의 피와 땀, 눈물이 서린 유물(遺物)을 여러 점 소장하게 됐습니다.
항상 주머니가 가볍지만 그래도 좋은 다완(茶碗)을 보면 주저 없이 구입을 합니다. 한주 힘들게 달려왔던 나를 위한 온전한 선물을 하나 해주기 위해 지갑을 엽니다. 오늘 세월감은 없지만 우리의 아픈 근대사와 궤를 같이 했던 비운의 인물이지요-, 영친왕비 이방자 여사가 만든 찻사발과 귀한 만남을 갖게 됐습니다.
정확한 명칭은 李方子 高麗茶碗 樂善斎 311g真作保証(이방자 고려 다완 낙선재 진작 보증)으로 일본 옥션에 올려놓은 다완(茶椀)인데요. 분청사기에 귀얄 기법으로 만들어진 예쁜 다완(茶椀)이었습니다. 입지름 14cmx높이 6.5cm의 딱 좋은 크기의 찻사발인데요. 눈에 쏙 들어올 정도로 마음에 들어 입찰해 응했습니다.
늦은 저녁이면 결정날 듯싶은데... 비록 돈은 없지만 나만을 위한 선물로 픽(pick)했습니다. 좋은 가격으로 낙찰됐으면 좋겠습니다. 골동품 시장에서 우리 돈으로 20만 원 정도 하는 모양인데 가격이 어느 정도까지 올라갈지... 그 알라면 정말 좋을 텐데... 현재까지는 제가 가장 유력한 입찰잡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