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 - 침묵(沈默)의 미학(美學)
잘 생긴 수석(壽石)을 지켜보면 소박한 산속에서의 삶을 즐기고 싶어 집니다.
그래서 우리 선비들이 돌을 바라보며 청빈(淸貧)한 삶을 추구했는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제가 수석을 하는 이유가 그런 건 아닙니다. 단지 자연이 좋아서, 그 자연을 담은 돌이 아름다워서 돌에 열광하나 봅니다(지난 9년 동안 나무를 하며 죽은 것에 질려 수석에 더 큰 관심과 애정을 갖는지도 모릅니다).
크고 작고 간에 돌들이 지닌 이러한 아름다움에는 투(透), 누(漏), 수(瘦)라 부르는 세 가지 요소가 깃든다고 하고,
돌에서 이러한 아름다움의 조화를 발견하는 것은 돌을 좋아하고 보고 즐기는 선비들이 지닌 마음과 눈의 한 자세라고 합니다.
말하자면 돌에는 어디로도 통할 수 있는 오솔길이 있음 직한 아름다움이 살고 있으니 이것이 '투(透)'의 미요,
돌은 그 어디에도 눈이 있어서 그 어느 면에도 소홀히 외면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으니 이것이 바로 '누(漏)'의 미요,
돌은 고고하게 솟아나서 오랜 풍상에 부대낀 조촐하고 메마른 아름다움을 지녔으니 이것을 일러서 '수(瘦)'의 미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아름다움이 때로는 함께,
때로는 홀로 자연스럽게 그 아름다움을 가눌 때 돌은 그 주인의 사색 속에서 숨 쉬는 아름다움으로 나날이 자라나고,
돌의 주인은 침묵하는 돌의 의지에 마음을 지긋이 의지하며 어지러운 세상을 살아가는 힘을 찾는지도 모릅니다.
침묵(沈默)의 미학(美學)인 돌...
만고풍상(萬古風霜)을 겪은 채 쓰다 달다 말이 없는 이 돌들의 고담(枯淡:꾸밈없는 담담함)한 풍채를 배우려 합니다.
기품 있는 삶을 돌에서 배우려 합니다.